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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자료실
작성자 james
작성일 2004-03-11 (목)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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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등반가, Wolfgang Gullich


* 알피니스트, 볼프강 궐리히(Wolfgang Gullich, 1960~1992)

동시대의 자유등반에서 창조성에 대해 말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고인이 된 볼프강 궐리히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1992년 8월 29일, 갑작스럽게 그가 타계할 때까지 세계자유등반계의 선두주자였던, 그 익살스런 젊은 독일인은 수많은 극한 자유등반루트들을 새롭게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소수의 자유등반가들이 그 전에 했었던 많은 어려운 루트들을 대담하게 등반하면서 그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많은 등반가들이 자신들의 안마당에서 자동차 차체에 의지해 확보보는 분위기하에 단순히 한 영역만 넓히려 한 반면, 궐리히는 대담하게 돌진하는 단독등반뿐만 아니라 고소에서의 벽등반 등을 행하면서 자유등반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그의 힘과 헌신,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그는 자유등반을 변혁시키고 등산의 위대한 전통내에서 보다 확고히 자유등반을 확립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궐리히는 유럽에서 인기있는 등반지들 중 하나인 독일의 슈드프팔즈 지역에서 14세에 자유등반의 묘미를 처음 느꼈다.  독일인으로서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른 라인하드 칼 같은 그런 유명한 인물의 지도하에 궐리히는 등반을 배웠다.  그와 칼, 그리고 다른 여러 등반가들은 하켄에 의지하지 않고 힘과 인내력, 그리고 기술에 의존하면서 기존의 많은 루트들에서 인공확보물들을 제거했다.  슈드프팔즈의 한 시험종목이었던 벨리 크랙(5.10b)에서 1977년에 그가 행한 등반은 자유등반에서의 놀라운 능력을 예언했다.

그후 그는 어려운 루트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일종의 자유등반 방랑자가 되었다.  그는 1979년에 동독의 샤소니 지역으로 가서 그 지역의 선두등반가인 번드 아놀드의 지도를 받아 월오브 선셋(5.11d)과 다이렉트 슈퍼래이티브(5.11d) 같은 고전루트에 성공했다.

그후, 곧 그는 미국으로의 첫여행을 떠나 거기서 뉴욕의 샤와컹크에서 슈퍼크랙(5.12d)을 해냈으며, 서부로 이동하여 요세미테에 있는 포에닉스(5.13a)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집중적인 훈련계획을 실행한 후, 1982년에 되돌아온 그는 그것을 깨끗이 마무리지었다.  그리고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자유등반 코스로 여겨진 캘리포니아의 슈가로프에 위치한 그랜드 일루젼(5.13c)에 눈길을 돌렸다.  그는 8일 간의 연속적인 노력 끝에 그토록 갈망하던 제 2등을 이루어냈다.  그 등반 후, 그는 너무 지쳐 30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먹었으며 잠도 잘 수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자유등반들을 재등하면서 경험을 쌓은 궐리히는 자신의 극한루트를 개척하기로 다짐했다.  1984년에 그는 독일의 알트뮤흐탈 지역의 카날 임 류쳄(최초의 5.13d급 루트)을 등반했다.  일년 후, 그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면서 아라필래 지역의 멋진 오버행 암장에서 그의 마술을 선보였다.  히즈 푼크스인더짐 루트는 첫 번째 5.14a 등급이 되었으며, 위스덤 오브 더 보디는 5.13d등급으로 매겨졌다.  한 번의 짧은 여행에서 호주대륙에서 첫 번째 및 두 번째 어려운 자유등반루트를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세계등반급수를 다시 향상시켰던 것이다.

그러한 뛰어난 업적들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더 한층 그의 꿈을 충족시켜줄 훈련기술들을 완성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농구와 체조 같은 운동들에서 착안한 훈련일정에 적용하여 1986년에 수년간의 노력에 대한 증거인 궤토 브라스터(5.14a)을 완성했다.  

더 한층 열심히 훈련한 그는 소위 불가능하게 보인 루트들에서 성공해냈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클라이밍 등반지들 중 하나인 프랑켄쥬라에서 아주 미완성인 한 선을 발견한 그는 그것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훈련일정에 돌입했다.  1988년에 그는 세계최초의 5.14b급 루트인 월 스트리트를 선등하여 자유등반계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 그 루트는 오직 한 번 재등되었다.

극한 자유등반루트들에 열중하면서도 그는 시간을 내어 1986년에는 요세미테의 세파래터 리얼리티(5.11d) 같은 어려운 단독자유등반과 1984년에는 동독의 드레스덴에 있는 브로컨 마로(5.12a) 같은 심한 '런 아웃' 루트들을 등반했다.  그러한 등반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통제력을 요구하였으며 고산에서 그가 자유등반을 행하기 위한 준비에 도움되었다.  

그는 1988년에 파키스탄에 위치한 그래이트 트랑고 타워의 중앙 필라에서 노르웨이 루트(5.10 A3)를 시도하여 이런 방향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위협적인 6000피트 직벽의 정상근처에서 악천후가 그와 커트 알버트, 그리고 여러 다른 동료들을 후퇴하도록 강요했으나 며칠간 휴식한 후, 그들은 트랑고(네임리스)타워의 유고 루트를 공격했다.  그들은 그 루트를 재등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피치는 5.12급 정도로 어려운 스물여덟 피치나 되는 거의 모든 구간을 자유등반함으로써 자유등반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이러한 인상적인 등반들을 행함으로써 궐리히는 심지어 좀 더 위협적인 루트들을 시도할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는 그 다음해 트랑고 타워에서 에터날 프레임이라 불린 신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커트 알버트와 함께 카라코람으로 돌아갔다.  5.12b급 한 피치, 5.12a급 두 피치, 많은 5.11급 피치들 그리고 몇몇 인공등반 피치 등, 스물여덟 피치의 그 루트는 그 때까지 등반된 가장 지속적으로 어려운 등반선으로 밝혀졌다.

그리고는 1990~91년 겨울, 심지어 보다 더 도전적인 루트를 시도하기 위해 그는 칠레의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얼음이 박혀있는 크랙들과 끔찍한 기후와 싸우면서 그와 커트 알버트, 번드 아놀드, 노버트 바쯔, 그리고 패더 디에트리흐는 파이네 중앙봉의 4300피트 동벽을 공격했다.  서른다섯 피치의 루트를 완성하는데 10일이 소요되었는데, 다섯 피치의 5.12급 등반과 많은 5.11급 등반들, 그리고 여러 인공등반피치들로 이루어진 아마도 동시대의 암벽등반들 중 가장 어렵고 모험적인 등반일 것이다.  그들은 아주 어울리게 그 루트를 "폭풍의 기수들"이라 명명했다.

고산으로의 여행에 의해 원기를 회복한 그는 극한 자유등반루트들을 위한 훈련에 자신을 몰입시켰다.  이러한 훈련은 1991년 가을 프랑켄쥬라에서 손가락 끝이 겨우 걸리는 작은 홀드들로 이루어진 짧고 가파른 다이나믹 등반루트인 '엑션 다이렉트'를 등반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우선 5.14d급으로 매겨진 엑션 다이렉트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극한 자유등반 루트일 것이다.  궐리히는 다시 한번 더 등급을 높여 경이로움을 품게 했던 것이다.

엑션 다이렉트와 다른 여러 등반들을 통해 궐리히는 등반범위를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유등반 범주내에서 전체적인 새로운 규정을 발전시키면서 자유등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환경에 적응하고 위험을 극복하는 모험등반의 고전적인 가치들을 자유등반의 신기한 새 분야에 적용시킴으로써 그같이 등반을 실행했던 것이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는 이 분야에서의 진보가 홀드를 깍아내거나 갖다붙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통해 자연과 밀접하게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졌음을 입증시켰다.  암벽에서 드러났듯 무한대의 자연을 읽을 수 있게 된 궐리히는 동시대 자유등반의 '장'을 변화시켰으며 이 분야의 장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했다.

독일의 리네 계곡에서 1960년 10월 24일에 태어난 궐리히는 19세에 군에 입대할 때까지 거기서 자랐다.  "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라 그가 말한 15개월 동안의 군복무를 마친 그는 프란켄쥬라 근처의 소도시 모셀스트르로 이사했다.  1991년에 결혼한 그는 부인 안네트와 함께, 1992년에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줄곧 거기서 살았다.  그들의 집은 등반정보를 얻기 위해 밤중에도 드나드는 세계 여러 나라 출신의 등반가들과 함께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지역에서의 많은 자유등반활동을 위한 일종의 비공식적인 등산본부로서의 역할을 했다.

맥주 대신 커피와 쵸코렛 케익 좋아한 궐리히는 검은 머리카락에 커다란 이두근의 익살스런 눈웃음을 짓는 친숙하고 열정적인 젊은이였으며, 자신의 특출한 재능에 대해 늘 겸손을 지킨 그를 우리는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이다.




홍원택: 일명 암벽의 발레리나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이지 영화 클리프행어인가를 촬영하고 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  -[03/11-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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