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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봉환
작성일 2004-02-04 (수) 01:16
ㆍ추천: 0  ㆍ조회: 305      
IP:
돌로미테 치마그란데 - 정호진 산행기
* 지난번 산행에서 만났던 Five Ten 사장님이 정호진 형님(연대 72학번)이라고 했던가?
  그 형님이 어떤 분인가 인터넷에서 찾아 봤답니다. 마침 올해 1월 27일에 올린 글이
   있어 제가 퍼왔습니다. 함~읽어 보시죠.

[ 해외등반 / 치마 그란데 ]
1930년대 초등 루트에서 탈진하다
돌로미테의 라바레도 3봉 중 최고봉
글․사진 정호진 대산련 등반경기위원장

2002년 7월26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 친구 주영과 나는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의 아웃도어 쇼 전시장을 빠져 나오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3일간의 바쁜 출장일정을 마친 우리 앞에는 이제 즐거운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고, 게다가 우리 손에는 거래처들로부터 테스트 명목으로 받은 샘플인 로프 2동, 프렌드 2조, 퀵드로 10조 등 막대한 공짜 장비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거 북벽 갈까? 그린델발트까지 여기서 2시간이면 간다는 말에 농담을 던졌더니 영이 진저리를 친다. 너 혼자 다녀와라! 예전에 그곳을 오른 그는 그 때 하산길에 폭풍설을 만나 거의 생을 포기할 정도로 혼난 적이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고, 일하러 와서 다치거나 조난당하면 절대 안 되는 우리는 주말 등반 대상지를 정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따져봐야 했다. 어프로치가 짧고 당일에 등반이 가능할 것, 통제할 수 없는 위험요소나 불확실성이 많은 알파인 루트보다는 난이도가 높지만 안전한 암벽루트일 것, 고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높이일 것 등등…. 이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곳으로 돌로미테(Dolomite) 지역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야 Lavaredo)의 치마 그란데(Cima Grande) 북벽이 우리의 표적이 됐다.

가까이 가보니 마법의 성곽처럼 음험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돌로미테 산군에는 수직의 거대한 석회암봉들이 수없이 많이 솟아 있는데,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는 거대한 수직의 봉우리 3개가 나란히 서 있어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로미테 산군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난 명봉이다. 이 세 봉우리에는 한스 듈퍼, 폴 프로이스, 에밀리오 코미치, 리카르도 카신 등 등산사에 있어 철의 시대를 풍미한 명등반가들의 클래식 루트들이 산재해 있다.

6시간의 드라이브 끝에 우리는 어두워져서야 돌로미테의 관광 중심지 코르티나(Cortina d‘Ampezzo)에 도착했다. 우리는 오면서 내내 옥신각신했다. 내일 바로 해치우자는 영의 과감한 의견과, 내일은 몇 가지 부족한 식량과 장비를 보충하고, 벽 밑 출발지점과 하강루트를 봐두고 모레 등반하자는 신중한 나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 내가 이겼다. 내일 아침에는 미사를 볼 수 있겠다.
아름다운 코르티나에서 맞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미사를 보고 성당에서 나와 한가롭게 거리구경을 하는데 저편에서 주영이 씩씩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큰일 났다. 호진아. 방 빼란다.”

아침에 호텔 프론트에 가서 숙박을 월요일 밤까지 이틀 연장하려 했더니 방이 없단다. 그래서 영은 내가 미사 보는 동안 온 동네를 헤매며 방을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바캉스철이라 싼 호텔은 방이 없고, 결국 우리는 본의 아니게 별 4개짜리 가장 좋은 호텔에 베이스캠프를 두는 호사를 부리게 됐다.

가이드북, 건전지, 필름, 식량 등 몇 가지 필요한 것을 사고 장비를 챙겨 정찰에 나섰다. 미시령도로를 뺨치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차로 40분 정도 오르니 아우론조(Auronzo) 산장이 나타났다.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라바레도를 등반 하고자 하는 팀은 이 곳, 또는 여기서 30분 정도 더 가서 라바레도 산장에서 자고 출발하라는 것이 가이드북의 권장 사항인데 베드 수가 많지 않아 성수기에는 예약이 필수적이라 한다.

아래와는 달리 바람이 불어왔다. 안개를 머금은 바람은 축축하고 차가왔다. 온통 사방으로 수많은 침봉들이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사라지곤 했다. 코르티나에서는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그 봉우리들은 마법의 성곽처럼 음험하게 보였다.

우리는 남쪽 사면의 트레일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안부에 올라섰다. 북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크다고 치마 그란데, 저 오른편이 서봉이라 치마 오베스트(Cima Obest), 왼쪽 봉우리는 가장 작다고 치마 피콜라(Cima Picolo)다. 우리는 가져간 가이드북과 벽을 맞춰보며 출발지점을 향해 북벽 밑으로 다가갔다. 우리가 오를 치마 그란데는 짙은 안개에 싸여 그 모습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고, 지독히도 경사가 진 북벽은 매우 위압적이었다.

“도대체 1930년대에 이런 루트를 어떻게!”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하네스가 보이지 않았다. 배낭을 쏟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차에 두고 온 것 같다. 예전엔 로프를 두고 오더니 이번엔 하네스를…. 오늘이 정찰등반이니 망정이지. 이젠 내가 나를 못 믿겠다. 할 수 없이 슬링 몇 개를 몸에 감아 하네스를 대신하고 로프를 보울라인으로 직접 묶었다. 야, 폼 나지, 코미치 같지 않니? 나는 이 난감하고 창피스런 순간을 모면해 보려고 너스레를 떨었다. 쪽 팔려서 너랑 같이 못 다니겠다. 주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날 우리는 코미치 루트를 세 피치 올라보고 하강했다. 어쩐지 심상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 같다. 코르티나로 돌아와 피자 한 판과 스파게티, 맥주로 저녁을 때우고 배낭을 꾸려놓은 다음-특히 하네스를 잘 챙겨놓고-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월 28일 월요일, 아우론조 산장에 올라가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저 아래 계곡은 아직 골안개 속에 잠들어 있는데, 라바레도 세 봉우리는 꼭대기부터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제 다녀와 익숙해진 우리는 마치 인수봉을 하러 가듯 거침없이 코미치 루트 출발지점으로 나아갔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코미치 루트가 아니었다. 코미치 루트는 1933년에 초등된 클래식 루트라 너무 쉬워 심심할까봐 왼편의 더 어려워 보이는 하세-브란들러(Hasse-Brandler)루트를 해볼까 했는데, 우리 실력을 알아챈 주위 사람들-유럽의 거래처 친구들인데 모두 한가락 하는 클라이머들임-이 모두 말리는 바람에 코미치 루트를 하게 됐다.

코미치 루트는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심심하기는커녕 초반부터 오버행으로 느껴지는 수직의 피치들은 우리의 모든 것-체력과 실력과 꽁수와 반칙 등을 요구했다. 최첨단의 암벽화와 프렌드, 트윈로프 등 가볍고 성능 좋은 장비들과 현대 등반기술을 총동원해 올라가며 우리는 도대체 이런 루트를 어떻게 1930년대에 올랐는지 코미치, 디마이 등 당대의 초등자들에 대한 존경의 염을 품게 됐다.

코미치가 누구인가? 그랑조라스 북벽, 피츠바딜레 동벽 등을 초등한 천하의 터프가이 리카르도 카신이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로부터 조언을 듣게 되는 것만 해도 굉장한 행운’이라며 흠모해 마지않던 걸출한 천재 등산가가 바로 코미치다. 그는 사다리를 이용한 인공등반 기술, 더블로프 방식 등을 처음 선보이며 돌로미테 지역에서 수많은 초등반을 기록했다. 제임스 딘처럼 핸섬하게 생긴 코미치는 스타일리스트요 완벽주의자로서 등반을 예술의 한 장르로 간주해 등반 동작과 리듬의 조화를 음악 작품의 그것과 같이 중요하게 여겼다.

가능한 한 수직의 아름다운 라인을 따라서 등반해낸 그의 여러 초등루트들을 보면 그의 남다른 심미안과 시대를 앞서는 원대한 비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봉우리 꼭대기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그 떨어진 선을 따라 올라가는 그런 등반을 나는 추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디레티시마(Direttissima․직등주의)라는 전위적인 등반사조를 주창했다(실제로 나는 코미치 루트 중간에서 볼 일을 보았는데 물방울(?)이 벽에 닿지 않고 정확히 스타트지점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저런 엄청난 루트를 프리솔로로!

오늘이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일기예보가 좋지 않은지, 북벽에는 우리 말고는 등반팀이 아무도 없어 적막했다. 등반 내내 왼편으로 보이는 하세-브란들러 루트의 수직과 오버행의 경사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 곳에 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그 무지막지한 경사를 보면서 욕지기를 느꼈다. 바위를 보고 속이 메슥메슥 거린 것은 처음이다.

기가 막힌 것은 그 하세-브란들러 루트를 프리솔로로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렉스 후버가 로프도 없이 저기를 프리로 올라갔단 말이지! 인간도 아냐. 우리 같이 선량한 클라이머들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그런 인간은 산을 떠나야 해! 어쩌고 하며 우리는 우리의 열등함을 정당화했다.

처음 경험하는 돌로미테 암질에서 받은 느낌은 친근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대체가 잘 생긴, 여차하면 프렌드를 박아 넣을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크랙을 찾기 어려웠다. 바위는 금방 부서질 듯 여기저기 금이 갔고 머리위로 얹혀진 오버행은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더구나 바위표면은 전혀 마찰력이 없었다. 질 좋은 화강암에 익숙한 나는 한 발 한 발 풋홀드를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지 않을까 매우 조심해야 했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각진 홀드들과 간간이 보이는 구멍 등을 잘 찾아서 평소보다 많이 힘을 소모하며 딛거나 매달려야 했다.

루트에는 기존 하켄들이 많이 박혀 있었다. 언제 박은 하켄인지 대부분 녹슬고 투박한 이 하켄들을 보며, 이것을 박으며 이 길을 거쳐 갔을 옛 클라이머들의 거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서질 듯한 바위틈에 반쯤 박혀 꼬부라져있는 하켄을 보고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살짝 매달렸지만 나중에는 만성이 되어서 하켄이 나오면 일부러 자세히 들여다 보지않고-안 매달릴 수는 없고 괜히 봐야 스트레스만 받으니까-그냥 매달리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초반에서 중단부까지 9피치가 수직의 어려운 부분인데, 이 구간은 인공등반 경험이 풍부한 주영이 훌륭하게 리드해 나갔다. 루트는 벽에 난 불연속적인 균열과 데드르, 테라스 등 뚜렷하지는 않으나 자연적인 라인을 따라 교묘히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볼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코미치 시대에는 볼트가 나오기 전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후대의 클라이머들도 이 루트를 초등 당시 상태 그대로 두어 등반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빅월 클라이밍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주영은 돌로미테에서도 그의 진가를 잘 발휘했다. 그는 애당초 프리냐 인공이냐 하는 스타일에 대한 고민 따위는 접어두고 오직 빠르고 안전한 등반방식을 그 때 그 때 적절히 구사하며 꾸준히 올라갔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주영이 부서질 듯한 바위틈새에 반쯤 박힌 하켄에 래더(줄사다리)를 걸고 체중을 싣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나는 하인리히 하러의 하얀 거미에서 읽은, ‘아끼는 그림은 물론 옷 한 벌도 걸어놓고 싶지 않을 만하게 박힌 하켄’이란 대목이 떠올랐다.

도대체 중간확보할 데가 마땅치 않아

그는 주로 인공등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올라갔는데 부득이 프리로 넘어가야만 하는 지점에서는 상당한 힘과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경사가 워낙 급해서 엄청난 고도감을 극복하는 것도 큰 일이었을 것이다. 운전석보다 조수석이 더 불안하고 힘이 들 때가 있는 것처럼 나는 그의 확보를 보며 무던히도 마음을 졸였고, 수직의 벽을 하도 올려다봤더니 목이 뻣뻣해져왔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급경사 부분을 돌파하고 이제 높이로는 중간쯤, 제법 편안한 자리에 도달했다. 이제부터는 내 차례다. 경사는 많이 누웠고 루트는 데드르와 침니를 따라가는데 개념도에 기재된 난이도도 5.8~5.9급 정도여서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날씨도 흐려지기 시작해 서둘러 올라가야 했다. 어렵지는 않은데 고정하켄이 드물고 마땅히 확보물을 설치하기도 여의치 않아 런아웃(run-out․최종 확보물과 등반자 사이의 거리. 추락하면 이 런아웃의 두 배 이상 떨어지게 됨)이 길어져 정신적으로 힘든 등반을 감행해야 했다.

그 중 약 80m에 달하는 침니는 정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피치였다. 항상 물이 흐르는 곳이라 그런지 손을 뻗어 홀드를 잡으면 마치 우럭 같은 물고기를 잡은 듯 그렇게 미끄덩거릴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가장 미끄러운 부분을 지나 한참을 올라도 고정하켄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바위는 젖어 있어 극도로 조심하며 홀드를 취해야 했다.

뭘 하나 박아야 할텐데, 프렌드고 너트고 잘 먹히지 않는다. 빌어먹을! 하고 욕을 해대며 그냥 올라가려는데 바로 코앞에 하켄이 보였다. 이놈의 하켄이 언제 나타났지 하고 얼른 카라비너를 걸었다. 거무스레한 바위틈새에 단단히 박힌 하켄은 같은 색이라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침니 중간의 테라스에서 피치를 끊고 주영의 확보를 보는데 물이 심하게 떨어진다. 자기확보줄로 몸이 묶여 피할 수도 없다. 빨리 올라오지 않고…. 저 아래 안개 사이로 주영은 매우 조그맣게 보여 그와 나 사이가 무척 멀게 느껴졌다. 그는 배낭 하나는 메고, 내가 도중에 벗어둔 배낭은 뒤에 매단 채 물에 젖어 더욱 검은 빛깔로 번들거리는 침니 속을 힘겹게 한참만에 올라왔다.

먼 데서 나던 천둥소리가 가까워지며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북벽에서 등반하고 장시간 확보 보느라 체온도 많이 빼앗긴 터라 여기에 비바람을 맞으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었다. 나는 선더스톰(thunderstorm) 속에 어둠을 맞아 비박하다 저체온증으로 저 세상에 가는 방정맞은 상상을 애써 지우며, 그저 살길은 빨리 꼭대기로 올라가서 안전한 노멀루트로 하산하는 길밖에 없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속도를 내서 정신없이 올라갔다. 그러다 보니 확보물 설치는커녕 있는 고정하켄도 종종 지나쳐 버려 뒤따라 온 주영의 “너 대단하다. 근데 웬만하면 좀 걸고 다녀라”하는 감탄 섞인 책망을 받기도 했다. 아마 그 때 이미 저체온증 내지는 고소증세(?)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이 비바람을 저 벽에서 맞았다면…

드디어 오후 5시 경 코미치 루트를 끝내고 정상부의 커다란 밴드에 도달했다. 여기서 꼭대기 가는 것은 의미가 없고, 밴드를 타고 오른편으로 돌아 노멀루트를 만나서 하강하라는 유럽 친구들의 조언대로 정상에는 가지 않았다. 아니 갈 마음이 없었다. 이제 지쳤고, 배도 너무 고프고, 날은 저물어 오고, 천둥 번개는 점점 가까워 오는데, 어둡기 전에 하강길을 잘 찾아 내려가는 게 급선무였다.

알파인 등반이나 빅월 클라이밍에서는 등반 후 하강루트를 잘 찾아 무사히 내려가는 것이 가장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가는 길인데  바위가 너무 커서 어디가 하강 포인트인지 찾기 어렵고, 잘못 내려서면 돌이켜 올라갈 수도 없고, 로프 회수도 조마조마하고….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도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마치 로컬처럼 정확하게 포인트를 찾아 하강과 다운클라이밍을 번갈아 하며 오후 8시경 안전한 지대에 내려설 수 있었다. 마지막 하강로프를 당기던 주영이 줄이 안 빠지는지 용을 쓸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곧 그것도 빠지며 로프가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보고 내 입에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잠시 후 퇴석지대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천둥번개는 그 빈도와 강도를 점점 높이더니 우리가 더 이상은 죽을 염려가 없는 하이킹 트레일을 만난 순간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어둠은 이제 사방을 완전히 덮었다. 잠깐 사이에 온 몸이 젖어들 정도로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나는 다시 한 번 이 비를 저 위에서 맞지 않게 돌봐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차를 타자마자 갑자기 업습한 지독한 두통과 오한 때문에 나는 이후 거의 정신을 못 차렸다. 등반 후 스테이크와 맥주를 사겠다는 약속도 못 지키기고 나는 코르티나의 호텔로 돌아와 뜨거운 욕조 속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혼자 남은 주영이 덩달아 저녁을 굶고, 방에 남은 맥주 세 깡통을 외로이 마시게 한 것에 대해 나는 깊이 반성한다.

*필자 약력
54년 서울 출생
1982 유럽 알프스 등반
1985 대승폭 초등
1988 에베레스트-로체등반
1989 요세미테 엘캐피탄, 하프돔 등반
1999 파타고니아 세로토레 등반
2003 캐나다 스쿼미시 그랜드월 등반
대한산악연맹 등반경기위원장
용악회원(용산고산악부 OB)
연세산악회원(연세대산악부 OB)
㈜넬슨스포츠코리아 대표

사진설명
1. 빅월클라이밍 전도사 주영. 중반까지 어려운 구간을 줄곧 리드했다.
2.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 가운데가 치마 그란데.
3.북벽으로 가는 길 옆 외로이 서 있는 추모비.
4.북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가 막히는 확보포인트. 세 지점 모두 미덥지 않다.
5.인공등반 횡단. 왼쪽으로 하세-브란들러 루트의 지독한 급사면이 보인다.
6.북벽으로 접근 중. 가운데 치마 그란데는 안개에 쌓여 꼭대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7.코미치 루트 하단부를 오르는 필자. 워낙 직벽이라 출발지점의 땅이 그대로 보인다.
8.모처럼 만난 테라스에서 암벽화를 벗고 쉬는 주영. 뒤로 치마 오베스트 수직벽이 보인다.
9.처음 경험하는 돌로미테의 암질은 매우 비우호적이었다. 한 발 한 발 온 신경을 집중.
10.제2피치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직벽이 시작되는 지점에 선 필자. 치마 오베스트 수직벽이 뒤로 보인다.
11.루트는 불규칙적인 크랙과 구멍, 데드르 등을 따라 교묘히 이어졌다. 우리는 로프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8mm 로프 2동을 트윈로프 방식으로 사용했다.
12.프리 구간을 넘어설 때는 상당한 힘과 용기가 요구된다.
13 다리 사이로 내려다본 북벽. 바로 땅이 보인다.
14 돌로미테의 전형적인 부서질 듯 한 암벽에 박힌 나이프하켄.

==>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건 대단히 섬세한 기록정신 입니다.
     이 정도는 돼야 산행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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