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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자료실
작성자 문봉환
작성일 2004-04-08 (목) 11:13
ㆍ추천: 0  ㆍ조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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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과 백두대간의 의미
* 태백산맥과 백두대간의 의미

1) 산맥은 일제의 자원찬탈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리개념

일본이 조선침략의 마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부터다. 이후 "일본인이 광상 및 지질연구를 위해 조선 국내를 순행하기를 요청할 때는 마땅히 그것을 허락할 것" 등을 끈질기게 요청하였다. 우리는 물론 거절했지만 애초부터 허락맡아 하고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1880년대부터 일본인들의 조선에 대한 지질 및 광상조사는 빈번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실시되었다. 청일전쟁의 목적으로 1:200,000 조선전도를 제작하였고,

이듬해인 1895년 러시아에 대비하기 위해 1:50,000 지도 일부를 완성했으며, 다시 1900년까지 1:200,000지도를 보완하였다. 그리고 강점 후 1910년부터 18년까지 9년 동안 대규모의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하여 나라 전체의 세밀한 지형도를 그렸다. 그러한 일련의 사업이 한국의 지리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할 것도 없이 광산 개발과 관련된 이권, 즉 수탈이 목적이다. 일본이 조선에서 특히 욕심을 낸 것은 쌀과 금 두가지였다.

쌀을 빼가기 위해 비축기지를 새로 만들고 수송도로를 냈으며 금을 캐가기 위해 지질조사에 광분했다. 그 와중에 묻어 들어온 사람이 '고토 분지로'라는 지리학자다. 그는 일본이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1900년과 1902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4개월 동안 실시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책임자 자격으로 우리나라의 지질을 조사했다.

그 조사를 토대로 「조선남부의 지세(1901년)」, 「조선북부의 지세 (1902년)」를 발표했고, 두 논문을 종합하여 체계화한 「조선산악론」 및 「지질 구조도」를 동경 제국대학 논문집에 발표했다. 그게 1903년이었다. 그때부터 조선 땅에 '산맥'이라는 용어가 나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고토의 논문은 조선 전래의 산줄기와 확연히 다른 것이며, 당시 유행하던 지질학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산맥분류의 시초가 되었고 체계와 명칭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지음) 제1장 산경표란 무엇인가 중 발췌>





2) 실제 산줄기와는 상관없이 땅속의 지질로 분류된 산맥도의 허와 실

산맥이란, 지질구조선을 바탕으로 암석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삼차원적인 배치를 기본선으로 한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형태로써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선을 말한다. 물론 서구 근대 지리학을 바탕으로 순수한 학문적 접근법을 취하여 논리의 합리적 형태를 구축한 것이리라 생각되어질 수 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의도되었는지 와전되었는지 모르겠지만 - 산맥이란 단어는 산줄기라 는 의미로 교묘히 포장되어 1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산맥을 산줄기와 같은 의미로 혼동함으로써 지형상으로 자연스런 산의 흐름이 절단되고 왜곡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고토 분지로 이후 특별한 지질조사나 논증없이 지금까지도 산맥체계와 명칭 등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산맥도는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으며 우리 문화의 전통과 역사의 왜곡은 물론, 총체적인 민족의 정기마저도 끊어놓게 된 것이다. 차령산맥 소백산맥 태백산맥이라 하는 산맥이란 말이 지질학적인 선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옛 선조들이 말하였던 그 산맥이란 뜻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이, 산줄기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산맥은 많은 혼동을 야기하고 있다.

같은 산맥일지라도 산들의 구분이 애매하고 산맥의 위치도 부정확한 곳이 많다. 그리는 이들의 마음대로 산이 옮겨 다니거나 산맥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산맥이 강을 건너기도 하는 등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이 많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실제 산줄기와는 상관없이 땅속의 지질로만 분류해 만든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산맥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녹색연합 백두대간 게시판 중 발췌>


3) 백두산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백두대간을 왜곡시킨 침략국의 의도

산맥체계를 만들면서 고토는 우리 민족의 구심점인 백두산을 철저히 무시하고 백두대간을 훼절시켜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백두대간을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산맥에 잔가지를 붙여 백두대간의 본래 모습을 알지 못하게 했다. 또한 낭림산맥을 강조 태배산맥-낭림산맥의 선을 나라지형의 중심축으로 부각시켰다.

태백, 소백 등 다른 산맥은 모두 산이름이 들어갔으나 백두산이 있는 마천령 산맥은 고개이름인 마천령을 따서 마천령산맥이라고 지명하였다. 또한 가장 짧은 산맥인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백두산 최고봉을 일왕의 이름인 대정으로 정하여 대정봉이라고 바꿔 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토는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산맥도에 한반도를 토끼형상으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토기와 지형의 대비 부분은 생략)..조선인들은 자기나라의 외형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형태는 노인의 모습이며, 나이가 많아서 허리는 굽고 양손은 팔짱을 끼고 지나에 인사하는 모습과 같다.

조선은 당연히 지나에 의존하는게 마땅한 일이다"고 여기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는 나라 땅을 호랑이의 형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고토는 백두산과 백두대간을 왜곡·훼절하는 것으로 부족하여 우리 민족성까지 비하하고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도록 강요했다.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지음) 제3장 산맥이란 무엇인가 중 발췌>


4) 일본인 한 개인이 단 14개월의 연구기간을 통해 만들어낸 산맥개념을 검증도
   없이 백년이상 사용하고 있는 현실

고토가 우리나라 땅을 조사한 기간은 1900년 및 1902년 두 차례에 걸친 14개월 동안이었다. 어떻게 기술수준도 미약했던 100년 전에 한 나라의 지질구조를 단지 14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완전하게 조사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실제로 고토는 북쪽지방은 많은 부분 답사하지 못해 묘향, 백운, 금산 산맥 등은 리히트호펜의 지질구조도를 베꼈다.

또한 남쪽 지방도 지역이 험하여 조랑말을 이용할 수 없는 지역은 살피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교차하는지 혹은 소백산맥이 습곡구조인지 경동지괴인지 잘 모르겠다" 따위의 많은 의문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3 년에 발표된 고토의 지질학적연구성과는 우리나라 지리학의 기초로 자리잡아 지리교과서에 들어 앉게 되었다.

이런 현실임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조사해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제의 침략야욕이 만들어낸 지리개념이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해방 후 50년이 넘도록 우리 지형에 맞지도 않는 산맥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지음) 제3장 산맥이란 무엇인가 중 발췌>


5) 지리는 지형상의 물리적 개념만이 아닌 그 땅의 인문지리를 함축한다

하나의 대간과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 여기에서 가지친 기맥으로 이 땅을 가름한 산경은 이 땅의 모든 생활권역의 자연스런 분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각 지방 또는 지역의 경계를 두고 우리는 크게 북부, 중부, 남부 지방으로 나누고, 영남, 호남, 영동 지방등으로 나누어 이야기 한다. 다시 나누어 안동, 단양, 남원 등의 지방으로도 이야기 하며, 해안에서는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지방으로도 구분하고 있다.

이들 지방들의 경계를 편의상 행정경계를 기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산경도에서 볼 때 북부는 해서정맥 북부, 중부와 남부는 백두대간의 속리산 구간과 한남금북정백~금북정백으로 이어지는 선으로 그 경계가 대별되어 오히려 자연, 인문, 식생, 기후 등 자연지리적인 측면에서 더 타당하다. 해안지방에서도 대체로 내륙 어디까지를 경계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 명확치 않다. 그러나 우리 산줄기 개념으로 볼 대 그 답을 얻을 수 있으며, 여타 지방의 경계도 산경도에서 쉽게 가름할 수 있다. 배산임수의 취락형성이나 발달, 그리고 식생활과 주거양식의 구분도 산경의 선과 일치하고 있다. 북부, 중부, 남부지방의 음식문화도 다르다.

특히 황세기젓 문화권, 새우젓 문화권, 멸치젓 문화권 으로 나누어 보면 재미있는데, 이런 문화권의 형성도 산경도로 쉽게 가름되는 것이다. 언어권의 분포도 우리말의 방언을 도별로 대별하지만 같은 도내에서도 크게 다른 말씨가 있다. 경상도 말은 강원도 속초지방에서 전라도 여수지방까지 분포하며, 같은 전라남도이지만 호남정맥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의 광주 말과 동쪽의 섬진강 유역인 곡성, 구례의 말은 전혀 다르다. 특히 경기도의 수원말과 이웃한 용인, 이천의 말이 다른데, 그 사이에는 한남정맥이 있다. 언어권은 사람들의 습성과도 연결되며, 풍속, 놀이, 혼례, 장법 등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준다.

옛 보부상의 상권과 오일장의 권역도 산경의 산줄기로 쉽게 알 수 있고, 절기와 식생의 분포, 꽃 의 개화일도 정맥의 선과 관계가 깊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상예보는 행정단위 중심에서 점차 지역특성이나 재해특성, 또는 생활권 등을 고려해 53개 국지예보로 바뀌었는데, 이 예보구역이 산경을 가름한 정맥과 그로부터 갈라져 분할하고 잇는 기맥들이 이루어 놓은 하나 하나의 지역과 일치하고 있다.

이처럼 지리개념은 그 땅의 지형의 물리적 개념만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지도에 그어진 선 하나하나는 단순히 지역의 경계만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경계가 된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산줄기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 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글 지도연구가 이우형) 에서 발췌>


6) 새로운 국토 인식에 따른 백두대간의 복원작업

백두대간 개념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태환경 등 모든 국토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분류체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찾는 것은 민족의 화합과 정체성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므로 이러한 개념을 계승하고 발전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그것이 과학적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더욱 필요한 일일 것이다. 백두대간의 개념과 원리의 원상회복의 필요성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과학적인 전통지리학의 개념을 되살리자는데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적 흐름으로 우리 전통지리학의 개념을 되살리자는 데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적 흐름으로 인해 우리 전통지리학 의 연구성과가 사라지고 왜곡되었다면 검증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우리학문의 업적도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둘째는 백두대간의 실체를 이해하고 이것을 토대로 미래의 국토관리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산줄기와 물줄기를 기본으로 하는 백두대간의 원리는 오늘날 국토의 정주체계 확립과 수자원 관리정책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미래 한반도의 통일에 대비하여 해양을 향한 동북아 교두보 확보에 기틀을 마련하고자 함이 다. 이미 북한에서는 우리나라 산맥체계를 「백두대산줄기」로 명명하여 백두대간이라는 한반도의 전통적인 자연지리 인식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백두대간이 갖고 있는 생태적 중요성이다. 대간, 정간, 정맥의 전통지리체계가 우리의 국토와 역사문화를 보다 잘 묘사하는 것이라면 백두대간의 개념정립과 이의 계승발전은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찾는 길이며, 그것이 곧 새로운 건국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백두대간의 지리학적, 역사학적, 문화적 의의에 대한 심도 있는 국가차원의 연구가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백두대간의 보전 및 관리방향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양수) 에서 발췌>



7) 백두대간 인식의 확대로 이원화된 지리개념 통합의 필요성

일제에 의해 역사 뒤켠으로 밀려나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질 뻔했던 백두대간은 1980년 이우형씨가 고서점에서 '산경표'를 발견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우형씨를 비롯한 몇몇 산악인들은 우리의 전통지리관인 백두대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헌식적인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 결과 90년대 부터는 대학 산악부와 일반 산악회 등의 젊은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백두대간 종주 등반의 붐을 이루었다.

종주를 통해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의 산줄기로서 과학성과 합리성을 입증 받기에 이른다. 이제 백두대간은 산악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산림청을 비롯하여 일부 공공기관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한반도 전체의 산줄기를 찾아 정립하려는 의지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점차 인식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런 역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도교육권의 지리교과서는 산맥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산맥개념을 외우고, 사회일각에서는 백두대간을 실용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어 한나라의 지리체계가 이원화되어 혼선을 빚고 있다. 이런 실정임에도 지리학계는 여전히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산맥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이제는 이원화되어 있는 지리체계에 대한 통합의 길 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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