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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자료실
작성자 문봉환
작성일 2004-03-16 (화)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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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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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스트, Chris Bonington

* 영국 산악인의 자존심, 크리스 보닝턴(Chris Bonington, 1934~   )

원정등반의 그 어렵고 위험스런 게임에서 크리스 보닝턴처럼 그렇게 능숙한 솜씨를 발휘한 사람은
드물다.  2차세계대전 후의 가장 유명한 원정대장들 중 한 명인, 이 원기 왕성한 영국인은
뛰어난 기술등반능력과 천부적인 원정조직능력으로 히말라야에서 이제까지 등반된 가장
기술적인 어려움을 요하는 몇몇 등반들을 이루어냈다. 1970년 안나푸르나 남벽과 197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으로의 그의 원정은 등산사에서 가장 얕잡아 볼 수 없는 업적들 중
하나씩으로 평가된다.

1934년, 영국의 햄프스테드에서 태어난 그는 그의 부모들이 그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이혼했기에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조용하고 수줍어하며 모험적인 소년이었던 그는
그의 어머니가 낮에 광고회사의 광고문안 작성자로 일할 동안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학창시절, 그는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런던의 유니버시티 콜리지 스쿨과
센드허스트에 있는 로얄 밀리터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거기서 그는 군 역사학에 매료되었다.  

아일랜드의 윅크로우 힐스와 워레스의 스노우 도니아에서의 여름휴가 중, 처음으로 그는
등산을 알게 되어 등산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16세에 암벽등반을
시작하고부터 급성장하여 여전히 십대 때 그당시 정상급의 수준에 도달했다.  

샌드허스트에서 졸업한 그는 1956년에 왕립탱크 연단에 임관했다. 북부독일에서 탱크병을
지휘하면서 3년을 보냈으며, 그리고는 군 수색 훈련소에서 등산강사로 2년을 근무했다.
이 시기에 그는 알프스에서 처음으로 등반했는데, 하미쉬 맥신니와 함께 1958년에
드류 남서 필라를 영국인 최초로 올랐다.

1960년, 그는 안나프르나 II봉으로의 영국-인도-네팔 군 원정대에 참가할 수 있는
초청장을 손에 넣었으며, 정상에 올라 훨씬 더 확신에 넘쳐흘렀다. 그 원정대의 대장인
짐 로버트가 보닝턴에게 대부역할을 했는데, 어떻게 등반가들을 효과적인 한 등반대로
결합시키고, 모든 일을 유연하고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등반전술은 어떻게
계획하는지를 보여줬던 것이다. 보닝턴은 로버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 그 후
자신의 원정에 그대로 적용했다.

유럽에 돌아온 보닝턴은 꾸준히 등반급수를 높여갔다. 1961년, 그는 돈 윌란스,
아란 크로우흐, 그리고 잰 드족로스와 함께 그 당시 알프스에서 최후의 등반들 중
하나였던 몽블랑 남측 프레네 중앙능의 초등을 거머쥐었다.

군 생활이 너무 제한적임을 안 그는 1961년에 군을 떠나 유니래버 회사에
경영초보자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아가린을 판매하면서 9개월을 보낸 후,
사랑하는 등산과 그러한 판에 박힌 직업과는 결코 조화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사표를 냈다. 그는 전문등산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며 1962년에
아이거 북벽의 영국인 초등을 이룩해낸 결과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몇몇 후원을
얻을 수 있었다.

포토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면서 짧은 루트들을 등반하며 몇 해를 보낸 그는 무언가
좀 더 큰 시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1968년에 그는 위협적인 안나푸르나 남벽원정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주요한 히말라야 벽이 등반된 적이 없었으며
그 고도에서 1,2000피트의 가파른 암벽과 빙벽을 시도하는 자체가 미지의 세계로의
첫걸음이었다. 보닝턴은 그 시도를 위해 강하고 응집력있는 등반대를 조직했으며
그의 군경험을 발휘하여 등반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그 등반대는 1970년 5월 27일에
듀갈 헤스톤과 돈 윌란스를 정상에 올리면서 성공했다.

안나푸르나 원정의 성공에 고무된 그는 훨씬 더 위협적인 에베레스트 남서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1972년 원정은 강풍과 뼈를 깍는 추위로 인해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그 루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영국에 돌아온 그는 1975년의 또다른 시도를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번엔 더그 스코트, 듀갈 헤스톤, 패터 보드맨, 그리고
셀파 퍼템바가 정상에 섰다.

2년 후, 그와 더그 스코트는 카라코람에 위치한 오그리의 초등을 위해 다시 힘을 모았다.
정상에 도달한 후, 스코트가 하강하다 미끄러운 바위면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양쪽 발목을
부러뜨려 즐거워야 했던 원정이 처참한 생존투쟁으로 변해 버렸다. 하산하면서 스코트를
돕던 보닝턴은 갈빗대 몇 개를 부러뜨려 나머지 원정동안 괴로운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모 안토니에와 크리브 로우랜이 부축한 그 두 부상자는 폭풍을 뚫으며 기아와 탈진상태로
겨우 베이스 캠프에 도달했지만 그들의 동료가 그들이 죽었다고 포기하고서 베이스 캠프를
철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 네 명은 기어내려오다시피 하여 마침내 놀라워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1978년, 보닝턴은 미등의 K2서능을 시도하기 위해 소규모 팀을 이끌었다.
그 등반대는 보닝턴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인 닉 에스코트가 그들 루트를 휩쓴
거대한 눈사태로 인해 사망할 때까지 착실한 전진을 했다. 에스코트의 죽음 후,
그 원정은 해체되었다.

중국이 서방에 등산문호를 개방하자 보닝턴은 즉시 입산허가를 신청했다.
1980년, 그는 서부 신지앙 지역에 위치한 미등의 외딴 봉우리 콩구르를 정찰했다.
그는 그 다음해에 패터 보드맨, 죠 태스커, 그리고 알랜 라우즈 등과 함께 돌아와
그 봉을 초등했다.

1982년, 그는 패터 보드맨, 죠 태스커, 그리고 딕 렌쇼우와 함께 미등의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시도했다. 렌쇼우는 경미한 고소증을 느껴 되돌아섰다.  보닝턴이 보드맨과
태스커보다 훨씬 느렸기에 그들만 정상에 가기로 결정났다.  그러나 그 바로 후,
그들은 사라졌으며 보닝턴의 가장 행복했던 원정들 중 하나가 되었을 원정이 망쳐졌다.  

1983년, 보닝턴은 보다 낮지만 기술적으로는 훨씬 어려운 대상으로 눈을 돌려
인도 강고트리 히말라야의 쉬블링(2,1330피트) 서봉을 택했다. 그와 짐 포더링햄은
5일간 알파인 스타일 등반하여 정상에 섰다. 바로 그 해 후반, 보닝턴은 빈슨 봉을
등반하기 위해 미국 팀과 함께 남극을 여행했다. 영하의 추위와 시간당 55마일의
강풍과 싸우면서 다른 사람들은 되돌아갔지만 혼자 정상에 도달했다.
며칠 후, 그는 동료들의 성공적인 시도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5년, 보닝턴은 노르웨이 에베레스트 원정에 초대되었다.
그의 부인 웬디에게 다시는 에베레스트를 시도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음에도
세계 최고봉의 매력은 너무 컸다. 그녀의 동의를 얻은 그는 그 초청을 받아드려
그 해 말에 세계의 정상을 밟으므로써 일생동안 품었던 야망을 충족시켰다.

에베레스트 등반 후, 보닝턴이 등산을 은퇴하더라도 이해할만 하지만
등산에 대한 그의 사랑은 한층 더 가속화 되었다. 1988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기술적으로 어려운 미답봉들 중 하나인 맨룽체(2,3450피트)로 원정을
이끌어 서봉을 초등정해냈다.

1991년, 그는 로빈 크녹스 존스톤과 함께 그린랜드로 진출하여 래몬 산군을 등반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쿠마온 히말라야에 위치한 판츠 츌리II(2,2600피트)봉
인도-영국 합동 원정을 이끌어 그래험 리틀과 함께 그 봉의 서능을 초등정했다.
바로 그 등반 후반에 스태판 베나블이 하강도중 다리를 부러뜨려 도움을 요청하러
가던 중 보닝턴은 가파른 설벽에서 400피트를 나뒹굴었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그는 매드코드까지 길을 재촉하여 구조대를 조직하여 베나블을 곧 헬리곱터로 후송했다.
그러한 구사일생에도 불구하고 보닝턴은 그리랜드와 코가서스, 그리고 세계의
여러 지역들로 등반여행을 계획하면서 계속 등반해오고 있다.  

요즘 보닝턴은 영국 북부의 래이크 디스트릭트에 살고 있다.
그 곳은 그가 한 시간 내에 많은 암장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와 웬디는 굽이치는 언덕과 하얀 털의 양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초록색 농장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시골풍의 작은 별장에 살고 있다. 그들은 1961년에 결혼했으며
두 아들, 다니엘과 루퍼트가 있다. 1962년부터 그들은 프리렌서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크리스는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등산가로서, 또한 웬디는
알렉산더 칵테일 기술강사로 생활하고 있다.

일종의 보닝턴 회사의 본부격인 그 집의 소박한 외형은 높은 수준의 인태리어를
그다지 많이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컴퓨터와 정교한 전자기계장치, 넓은 슬라이드 도서관,
그리고 팔월 중순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그와의 인터뷰가 행해졌던 책이 즐비한
서재 등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지나칠 정도로 후하게 대접하는 품위있는 사람이지만
보닝턴은 등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단 실제로 등반하러 가는데 분명 더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예상할 수 없는 영국날씨가 바로 그 날 암벽등반하러 갈 그의 계획을 망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가끔씩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회갈색의 수염과 밝은 푸른 눈을 가진,
그리고 정열적인 등반충동에 대해 억제할 수 없는 태도를 지닌 큰 키의 억센 사나이
보닝턴은 분명 산악계에서의 그의 권위있는 위상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신 항상 새로운 루트, 새로운 등반, 새로운 모험에 열중할 것이다.
길고 화려한 등산경력을 회상하기보단 항상 그는 그의 두 눈을 미래에 확고히
고정시킬 것이다.

그의 저서는 아래와 같다.
-  I Chose to Climb : 1966
- Annapurna South Face : 1971
- Everest South-West Face : 1973
- The Ultimate Challenge : 1973
- The Next Horizon : 1973
- Changabang : 1975
- Everest the Hard Way : 1976
- Kongur : Chinas Elusive Summit : 1982
- Quest for Adventure : 1982
- Everest the Unclimbed Ridge : 1983
- The Everest Years : A Climbers life : 1987
- Chris Bonington, Mountaineer : 1989
- Thirty Years Climbing on the Worlds Highest Peaks : 1989
- The Climbers : A history of Mountaineering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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